법무법인 윤강 허제량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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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겨울이 지나가고 어느덧 봄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특히 3월부터 직장 내 인사이동, 학생들의 개학 시점 등과 맞물려 소위 ‘이사 시즌’이 시작된다. 어느 통계자료에서 이사하는 일이 인간이 받는 스트레스 순위 5위 안에 든다는 사실을 본적이 있는데, 한 가구가 이사를 하는 일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닐 뿐더러, 그 비용 또한 만만치가 않다.

우리 도시정비법 및 토지보상법에서는 재개발사업구역 내 거주자들이 재개발사업으로 인해 거주지가 강제 수용되는 점 등을 감안해 주거이전비, 이주정착금, 이사비 등 각종 손실보상제도를 두고 있는 바, 특히 정비사업구역 내 거주자들의 ‘이사비’에 대해 다루어 보고자 한다.

현재 우리 법제 하에서는 주거이전비의 경우 ‘정비계획에 관한 공람·공고일부터 해당 건축물에 대한 보상을 하는 때까지 계속해 거주한 자(소유자)’가 지급대상자라고 해 거주요건을 법령 내지 판례로 정하고 있고, 이주 정착금 역시 위와 같은 거주요건을 갖춘 소유자에 한해 지급하는 등 나름대로의 엄격한 요건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사비의 경우 재개발사업구역 내에서 거주하다가 재개발사업의 시행으로 인해 이주를 하는 경우 거의 무조건적으로 지급해 왔으며, 이사비와 관련해 지급 요건을 명확히 제시한 판례도 찾기가 어려운 상태이다. 그런데 최근 서울행정법원과 서울고등법원에서 이사비와 관련한 주목할 만한 판결이 선고돼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 사건의 개요

이 사건은 재개발사업시행지구 밖에 거주하던 사람이 재개발사업시행지구의 사업시행계획인가 고시 후 사업시행지구 내에 건물을 임차해 세입자로서 전입했는데, 관리처분계획인가 후 조합의 건물명도청구 등이 개시되자 다시 사업시행지구 밖으로 이주한 뒤, 조합을 상대로 이사비를 청구한 사건이다.

위 사건에서 필자는 조합 측의 소송대리를 맡아, 원고(세입자)는 사업시행인가일 이후에 정비사업구역 내로 전입했기 때문에 재개발사업의 시행으로 ‘인해’ 이주하게 되는 자가 아니고, 대법원 등 우리나라 판례에서 이사비 지급 대상자로 인정하는 자는 적어도 ‘사업시행인가고시일 이전에 전입해 거주했던 자’라는 점이 전제돼있다는 주장을 적극적으로 했다.

 

∥ 서울행정법원의 판단

이에 원심인 서울행정법원은 ▲공익사업의 추진을 원활하게 함과 아울러 주거를 이전하게 되는 거주자들을 보호하려는 이사비 제도의 취지 ▲사업시행자에게 수용권이 부여되는 사업시행계획인가고시일 이후에 정비구역 내로 전입한 사람들의 경우 가까운 시일 내에 사업구역 내 건축물들이 모두 철거될 것을 미리 알고 정비구역 내 전입한 것으로서, 정비사업의 시행으로 인해 불측의 손해를 입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 등을 이유로 “이사비 보상대상자가 되기 위해는 사업시행인가고시일 이전부터 정비사업구역 내에 거주할 것이 요구된다”고 판시했다.

즉, 원고의 경우 이사비 제도의 정책적인 목적에 부합하지 않아 이사비 지급 대상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 서울고등법원의 판단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에서 원고는, 법률문외한임을 이유로 사업시행인가 고시로 인해 건물이 철거될 것을 알 수 없었다고 주장하거나, 관리처분계획인가 고시일이야말로 진정한 사업시행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추가 했다.

하지만, 서울고등법원 역시 원심의 판결을 그대로 원용하면서 ▲관리처분계획인가 고시일 이전에 이사비 등 보상이 전부 이뤄지는 것이 원칙인 점 ▲사업시행인가 고시일은 정비사업의 시행이 본격화돼 주거의 이전이 확정적으로 예정됐다고 볼만한 객관적인 표지가 생긴 시점이므로 사업시행인가 고시일 이후에 정비구역 내 전입한 사람들은 정비사업의 시행으로 인해 불측의 손해가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는 점 ▲관리처분계획인가 전에 이사비를 지급해 관리처분계획인가 후 바로 건물을 철거해 신속한 공익사업의 추진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이사비 보상대상자가 되기 위해는 사업시행인가고시일 이전부터 정비사업구역 내에 거주할 것이 요구된다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 결어

우리 헌법 제23조 제3항에서는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토지보상법에서는 위 헌법조항의 위임을 받아 공익사업 시행으로 인해 재산상 손실을 입게 되는 국민들을 보호하는 각종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보호는 어디까지나 공익사업으로 인해 진정으로 재산상 손실의 만회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 헌법, 관련 법령 및 판례에 의해 인정되는 손실보상제도가 남용된다면, 주민들의 거주환경 향상 및 생활이익의 증대, 도시미관의 개선 등 공익적 목적을 가지고 시행되는 재개발사업의 원활한 진행이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실제 손실보상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어질 보상금까지 부족하게 될 우려도 있다.

그동안 이사비 지급 대상에 관한 거주요건은 명확히 판단된 바 없다. 비록 대법원의 판단이 남아있지만, 필자가 수행한 위 사건의 판결로 인해 적어도 ‘사업시행인가 고시일 이후’에 전입한 세입자들은 손실보상제도를 남용해 이사비를 지급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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